[인터뷰] '갈라진 마음들' 펴낸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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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8-17 08:57 조회2,2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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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무감각이든 분노든 결국 근원을 같이하는 ‘쌍생아’입니다. 최근 북한군의 민간인 사살 사건에서 국방부가 굳이 ‘월북’이란 말을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잉된 적대를 의식한 자기검열적 방어기제는 아니었을까요. 분단 문제는 모두 다 감정적 대응을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을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공유하게 되는 ‘분단적 마음’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며 태극기를 휘두르는 노인부터, 북한을 한국 경제의 ‘먹거리’로 해석하는 중장년층, 북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젊은이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모두는 분단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갈라진 마음들>은 정치적·경제적 분단을 넘어 사람들의 경험, 인식, 감정의 층위에서 북한, 그리고 분단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 5일 인터뷰에서 “한국사회 갈등과 분열의 근원에는 분단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며 “남북한 저마다 갈라진 마음의 풍경을 드러내 우리 안에 문제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감각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책의 호명이 생경하다. 북한이 아니라 ‘북조선’이고, 탈북자가 아닌 ‘북조선 출신자’이다. “제가 중국에서 북조선 식당을 찾아가 ‘여기 북한 식당 맞죠’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아무도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30~40초 정도 침묵이 흘렀을까. ‘여기는 북조선 식당입니다’라고 답하더군요. 망치로 얻어맞은 거 같았죠. 축구선수 호나우두지 로날도가 아니잖아요(웃음). 우리가 관계 맺으려 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상대방을 제대로 불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분단적 마음은 ‘적대’보다도 ‘무감각’이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말폭탄을 주고받을 때 외신 기자들이 목도한 모습은 평온한 한국 시민이었다. “무감각을 선택해야지만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분단 폭력이 일상 곳곳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이를 ‘애써’ 무시하거나 넘어서는 상황에 대해서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은 “폭력 없는 세상을 기획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착화된 70년의 분단이다. 신자유주의적 감정인 ‘혐오’가 북한과 맞물리기도 한다. “경쟁사회에선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거나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열등한 존재로 혐오하죠. 이 공정 프레임에선 내가 1을 주면 똑같이 1을 받는 게 정의인데 대북 지원은 혐오의 좋은 표적인 거죠. 평화라는 무형의 가치는 당장 환산되지 않으니 ‘퍼주기’라는 공격이 먹히는 겁니다.”
태극기 세력의 혐오는 냉전 질서 아래 산업화의 주축이었던 이들이 시대 변화에서 도태되자, 과거의 독재자와 미국을 광신적으로 숭배하며 새로운 가치체계에 적대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태극기 세력을 ‘이상한’ 존재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는 실제적 공포거든요. 한국사회 내부의 대화가 이루어져야 남북 간 대화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북한 인민의 마음은 어떨까. 큰 틀에선 수령 중심의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체계로 설명된다. 북한의 독특한 마음의 습속을 살펴볼 수 있는 제도로 ‘신소(伸訴)’가 있다. 각 개인이나 집단에서 권익이 침해당했을 때 당 및 국가기관 등에 문제를 제기할 권리를 가리킨다. 특히 엄중한 문제는 중앙당 1호 신소를 하게 되는데, 김일성과 김정일이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어느 북한분이 한국 회사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단계를 밟는 게 아니라 바로 제일 높은 사람을 찾아갔다는 거예요. 회사에선 무척 당황스럽죠. 이유를 들어보니 북한에선 문제가 생기면 조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을 찾아간대요. 어차피 제일 높은 사람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문득 청와대 청원이 떠오른다. “결국 청원 내용도 ‘지도자가 알면 해결해주실 텐데, 밑에 사람이 안 하고 있어’라는 거잖아요. 지도자에 대한 지나친 신념이 민주주의 체계가 잘 갖춰진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거죠. 과도한 정치화와 권위주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 분단체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1990년대 남한이 IMF 금융위기를 겪으며 적자생존에 돌입했다면,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기점으로 자력갱생에 내몰렸다. “남한에선 북한 인민들이 ‘세뇌’됐다고 납작하게 바라보죠. 얘기를 들어보면 새벽부터 나가서 먹을 것을 마련하고, 자기 것을 지키려 싸우기도 하고 역동적이에요. 살벌한 감시체계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서로 돕는 자조의 성격이 있다고 해요. 우리는 사람 대신 체제만 보는 거죠. 북한에도 다양한 마음들과 상호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북한을 성애화하거나 관음증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종편에 나오는 북한 출신 여성만이 아니라 김여정·리설주에 대한 관심도 매한가지다. “북한은 목소리가 없어요. 우리가 맘대로 재단해서 재현하는 거죠. 문제는 재현이 현실이 되는 지점입니다. 그 재현을 실제로 받아들이면 북한과의 동등한 대화가 가능할까요.”
김 교수는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말한다. “이 책의 처음을 ‘분단이 지겹다고 한다’라고 썼습니다. 왜 가고 싶을 때 북한에 갈 수 없지? 어째서 평화로운 상태를 상상하지 못하지? 당연한 질문들을 던져봤으면 합니다.” (2020년 10월 11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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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며 태극기를 휘두르는 노인부터, 북한을 한국 경제의 ‘먹거리’로 해석하는 중장년층, 북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젊은이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모두는 분단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갈라진 마음들>은 정치적·경제적 분단을 넘어 사람들의 경험, 인식, 감정의 층위에서 북한, 그리고 분단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 5일 인터뷰에서 “한국사회 갈등과 분열의 근원에는 분단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며 “남북한 저마다 갈라진 마음의 풍경을 드러내 우리 안에 문제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감각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책의 호명이 생경하다. 북한이 아니라 ‘북조선’이고, 탈북자가 아닌 ‘북조선 출신자’이다. “제가 중국에서 북조선 식당을 찾아가 ‘여기 북한 식당 맞죠’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아무도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30~40초 정도 침묵이 흘렀을까. ‘여기는 북조선 식당입니다’라고 답하더군요. 망치로 얻어맞은 거 같았죠. 축구선수 호나우두지 로날도가 아니잖아요(웃음). 우리가 관계 맺으려 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상대방을 제대로 불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분단적 마음은 ‘적대’보다도 ‘무감각’이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말폭탄을 주고받을 때 외신 기자들이 목도한 모습은 평온한 한국 시민이었다. “무감각을 선택해야지만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분단 폭력이 일상 곳곳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이를 ‘애써’ 무시하거나 넘어서는 상황에 대해서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은 “폭력 없는 세상을 기획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착화된 70년의 분단이다. 신자유주의적 감정인 ‘혐오’가 북한과 맞물리기도 한다. “경쟁사회에선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거나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열등한 존재로 혐오하죠. 이 공정 프레임에선 내가 1을 주면 똑같이 1을 받는 게 정의인데 대북 지원은 혐오의 좋은 표적인 거죠. 평화라는 무형의 가치는 당장 환산되지 않으니 ‘퍼주기’라는 공격이 먹히는 겁니다.”
태극기 세력의 혐오는 냉전 질서 아래 산업화의 주축이었던 이들이 시대 변화에서 도태되자, 과거의 독재자와 미국을 광신적으로 숭배하며 새로운 가치체계에 적대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태극기 세력을 ‘이상한’ 존재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는 실제적 공포거든요. 한국사회 내부의 대화가 이루어져야 남북 간 대화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북한 인민의 마음은 어떨까. 큰 틀에선 수령 중심의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체계로 설명된다. 북한의 독특한 마음의 습속을 살펴볼 수 있는 제도로 ‘신소(伸訴)’가 있다. 각 개인이나 집단에서 권익이 침해당했을 때 당 및 국가기관 등에 문제를 제기할 권리를 가리킨다. 특히 엄중한 문제는 중앙당 1호 신소를 하게 되는데, 김일성과 김정일이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어느 북한분이 한국 회사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단계를 밟는 게 아니라 바로 제일 높은 사람을 찾아갔다는 거예요. 회사에선 무척 당황스럽죠. 이유를 들어보니 북한에선 문제가 생기면 조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을 찾아간대요. 어차피 제일 높은 사람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문득 청와대 청원이 떠오른다. “결국 청원 내용도 ‘지도자가 알면 해결해주실 텐데, 밑에 사람이 안 하고 있어’라는 거잖아요. 지도자에 대한 지나친 신념이 민주주의 체계가 잘 갖춰진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거죠. 과도한 정치화와 권위주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 분단체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1990년대 남한이 IMF 금융위기를 겪으며 적자생존에 돌입했다면,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기점으로 자력갱생에 내몰렸다. “남한에선 북한 인민들이 ‘세뇌’됐다고 납작하게 바라보죠. 얘기를 들어보면 새벽부터 나가서 먹을 것을 마련하고, 자기 것을 지키려 싸우기도 하고 역동적이에요. 살벌한 감시체계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서로 돕는 자조의 성격이 있다고 해요. 우리는 사람 대신 체제만 보는 거죠. 북한에도 다양한 마음들과 상호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북한을 성애화하거나 관음증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종편에 나오는 북한 출신 여성만이 아니라 김여정·리설주에 대한 관심도 매한가지다. “북한은 목소리가 없어요. 우리가 맘대로 재단해서 재현하는 거죠. 문제는 재현이 현실이 되는 지점입니다. 그 재현을 실제로 받아들이면 북한과의 동등한 대화가 가능할까요.”
김 교수는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말한다. “이 책의 처음을 ‘분단이 지겹다고 한다’라고 썼습니다. 왜 가고 싶을 때 북한에 갈 수 없지? 어째서 평화로운 상태를 상상하지 못하지? 당연한 질문들을 던져봤으면 합니다.” (2020년 10월 11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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